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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의 논리는 단 하나였다. 비트코인은 그 자체로 가치가 없는 전자 기록일 뿐이고, 가치 없는 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태국의 휴양지 코사무이섬에서 한 가족을 협박해 비트코인 2.48개를 넘겨받게 한 일당을 도왔다. 태국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열어 이 주장을 검토한 끝에 기각했다. 2026년 10월 28일 공개된 판결 요지의 결론은 이렇다. 비트코인은 재산이며, 법은 지갑을 지켜 주듯 비트코인도 강도로부터 지켜 준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훔칠 수 있을까? 순진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법률가들은 10년 넘게 이 문제로 다퉈 왔고 나라마다 지금도 답이 다르다. 2015년 도쿄 법원은 비트코인은 소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1890년대 독일 법원은 같은 논리로 전기를 몰래 끌어다 쓴 남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류는 물건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이 답은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 경찰이 도난 신고를 받아 줄까? 거래소가 파산하면 코인은 누구 몫일까?
코사무이의 카페
강도 사건은 2022년 9월 15일 코사무이의 한 카페에서 벌어졌다. 외국인 남성 다섯 명이 러시아 국적의 아내와 함께 있던 남편의 테이블에 앉았다. 사건을 다룬 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가족의 동선을 다 알고 있다고 드러내 보였고, 부부의 어린 자녀를 위협했으며, 남편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압박에 못 이긴 아내는 5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187만 8000바트를 들여 2.480801 BTC를 사서 공격자 중 한 명이 관리하는 지갑으로 보냈다.
법원 문서는 피고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피고인 A’라고만 부른다. 판결 보도들을 종합하면 그는 카페에 있던 다섯 명에 속하지 않았다. 대신 일당이 섬에 들어오는 이동편과 숙소, 그리고 페리를 이용한 도주를 준비해 주었다. 1심 법원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가, 그의 진술이 수사에 도움이 되었다며 3분의 1을 감형해 10년으로 줄였다. 법원은 또 비트코인을 피해자에게 돌려주고, 돌려줄 수 없으면 187만 8000바트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대법원은 징역 10년을 그대로 유지했다.
변호인의 주장이 들리는 것만큼 허황했던 것은 아니다. 대법원도 인용한 태국 민상법 제137조는 ‘물건’을 유체물, 즉 물리적인 몸체가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비트코인은 손에 쥘 수 없다. 무게도 크기도 없다.
법원은 시장을 근거로 답했다. 비트코인에는 시세가 있고,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으며, 누구나 보유할 수 있다. 누군가 치른 값만큼의 가치는 최소한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암호화폐를 상품과 서비스 대금을 치르는 데 쓰는 전자 데이터로 규정한 2018년 디지털 자산 관련 법령도 근거로 들었다. 태국은행의 서한은 암호화폐가 법정화폐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재판부는 이를 다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보고 제쳐 두었다. 금괴나 그림으로 식료품값을 낼 수는 없어도, 둘 다 훔칠 수는 있다. 돈이냐 아니냐와 재산이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다.
전류도 물건이 아니었다
같은 다툼이 예전에도 있었고, 그때는 피고인 쪽이 이겼다. 1895년 1월 12일부터 17일까지 킬의 한 남자가 요금을 낼 생각 없이 지역 발전소의 전류로 모터를 돌렸다. 킬 지방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독일 형법에서 절도는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을 가져가는 일이었고, 물건에는 물리적 몸체가 있어야 했다. 재판부는 전기를 물질이 아니라 힘, 또는 물질의 한 상태로 보았다. 1896년 10월 20일 독일 최고법원인 라이프치히의 제국법원은 이 무죄 판결을 그대로 두었다.
법원은 법조문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으니, 입법자들이 조문을 만들었다. 1900년 4월 9일 독일은 ‘전기 에너지의 인출’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징역이나 최대 1500마르크의 벌금으로 처벌하게 했다. 이 법은 지금도 독일 형법 제248c조로 남아 절도 장에 실려 있다. 그러나 전류를 가져가는 일이 절도가 된 적은 없다.

비트코인도 전류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주머니에 넣을 수 없다. 게다가 물리성은 더 떨어진다. 전기는 그래도 전선을 타고 흐르지만, 비트코인은 공유 거래 장부에 적힌 항목들의 합으로만 존재한다.
아무도 소유할 수 없던 458개의 코인
2014년 도쿄의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는 막대한 양의 비트코인을 도난당한 뒤 파산했다. 한 고객이 파산관재인에게 자신의 코인 458개를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논리는 단순했다. 그 비트코인이 자기 것이라면 파산 재단에서 빼내 자신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8월 도쿄 지방법원은 이 요구를 거절했다. 일본 민법은 유체물에 대해서만 소유권을 인정한다. 고객은 블록체인 기록이 곧 자신의 비트코인이며 자신만이 그것을 통제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블록체인에는 이체 내역이 저장될 뿐이고, ‘잔고’는 그 이체들을 더해야 비로소 나타난다. 비트코인 그 자체인 단일한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1심 판결이어서 당사자 밖에는 누구도 구속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논리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정확히 보여 준다.
비트코인을 소유할 수 없다면, 파산한 거래소의 고객은 줄 서서 기다리는 채권자 중 한 명일 뿐이다.
남의 USDT로 산 펜트하우스
2023년 싱가포르에서는 급여 사건으로 이 문제가 불거졌다. 호카이신(Ho Kai Xin)은 바이비트 거래소 직원들에게 암호화폐로 급여를 주던 도급업체에서 일했고, 월별 지급 스프레드시트를 혼자 수정했다. 2022년 5월 31일부터 8월 31일 사이 비정상적인 지급 8건으로 420만 9720 USDT가 주소 네 곳으로 빠져나갔다. 그중 한 지갑은 제공업체 기록상 그녀의 신분증과 셀카로 등록되어 있었다. 호는 사촌 제이슨이 그녀의 노트북을 썼다고 둘러댔다. 법원은 제이슨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바이비트에 따르면 그 돈은 약 36만 2000싱가포르달러짜리 새 차와 3만 싱가포르달러어치 루이비통 제품에 쓰였다. 호는 이미 주문해 둔 공공 아파트도 취소하고, 남편과 함께 가치가 370만 싱가포르달러에 가까운 영구 소유권 펜트하우스를 샀다. 필립 제야레트남(Philip Jeyaretnam) 판사는 암호화폐 자산 보유자가 ‘소송상 동산(thing in action)‘에 대한 재산권을 갖는다고 썼다. 은행 계좌의 돈을 떠올리면 된다. 만질 수는 없어도 내 것이고, 법원이 지켜 준다.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USDT가 누군가의 재산이므로, 법원은 호에게 빚을 갚으라고 명령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코인 자체를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코인은 거래소 것이 아니라 고객 것
마운트곡스 사건에는 거울상 같은 사례가 있고, 그것은 과거 판결로 법의 상당 부분이 만들어지는 영미법 국가에서 나왔다. 2020년 뉴질랜드의 겐달(Gendall) 판사는 해킹당한 암호화폐 거래소 크립토피아의 붕괴를 맡았다. 그는 거래소에 있던 코인이 고객의 것이고 크립토피아는 9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신해 보관했을 뿐이라고 판결했다. 이런 판결에는 패자가 생긴다. 코인이 공동 풀에서 빠지자 크립토피아의 다른 채권자들은 몫이 줄었다. 받을 돈의 약 85%를 돌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 이제 절반에도 못 미치게 됐다.
영국은 결국 이를 법으로 정했다. 2025년 12월 2일 디지털 자산법이 시행되었다. 영국법은 인적 재산을 두 종류로 인정해 왔다. 손에 쥘 수 있는 물건과, 차용증이나 은행 예금처럼 집행할 수 있는 권리다. 이제는 어느 쪽에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재산 보호를 잃지 않는다. 암호화폐는 세 번째 종류로 인정될 수 있다. 이 세 번째 범주가 어디까지인지는 법원이 가려야 한다.
러시아는 압수부터 배웠다
코사무이 카페에서 강도를 당한 여성은 러시아 국적이고, 그녀의 조국도 반대 방향에서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압수에서 출발한 것이다. 2026년 2월 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디지털 화폐를 형법상 재산으로 간주하는 법에 서명했다. 이 법은 주로 압수와 몰수를 다룬다. 수사기관은 키가 들어 있는 USB 메모리나 하드웨어 지갑, 컴퓨터를 가져갈 수 있고, 기술적으로 가능하면 코인을 국가가 통제하는 주소로 옮길 수 있다.
넉 달 뒤인 2026년 6월 16일 러시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서 절도, 강도, 특수강도에 관한 2002년 지침을 개정했다. 훔칠 수 있는 것의 목록에 이제 은행 잔고와 디지털 루블에 더해 디지털 화폐와 디지털 권리가 들어간다. 이런 자산의 절도는 피해자의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완성된다. 피해자에게는 법원이 남의 암호화폐를 가져간 행위를 은행 계좌에서 돈을 가져간 것과 똑같이 절도나 강도로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인정에는 양면이 있고, 러시아의 순서가 그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재산은 법이 도둑으로부터 지켜 주는 것이자, 동결하고 몰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 보유자에게는 공정한 거래다. 코인이 단순한 데이터로 취급되는 한, 도둑을 처벌하기도 코인을 되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2022년 가격으로 정해진 배상
이제 코사무이 카페의 그 가족이 남는다. 법원은 비트코인의 가치를 취득 비용에 연동했고, 따라서 코인이 돌아오지 않으면 배상액은 그 가격인 187만 8000바트로 고정된다. 2026년 10월 30일 바이낸스 해킹 이후 비트코인은 7만 7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같은 2.48 BTC는 이제 약 19만 달러로, 아내가 강제로 치른 값의 거의 네 배다.
코인이 끝내 나타나지 않으면 가족이 받는 현금은 현재 가치의 4분의 1 정도다. 비트코인을 재산으로 인정한 것은 일의 절반일 뿐이었다. 다음 싸움은 어느 가격을 기준으로 삼느냐다. 그때 치른 값이냐, 지금의 값어치냐.







